Bugaboo Spire

밤새도록 비가 내린것도 모자라서 아침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텐트엔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되는 아이와 저 둘. 텐트안에서 간단히 아침을 해먹고 누워서 이런 저런 얘기를 쫑알쫑알. 두 남자가 뭔 할 얘기가 많은지 비속 캠핑 이야기 이며, 대학생활, 저의 산생활, 직장생활 등등 얘기가 계속 나오더군요. 그러다 텐트속에서 딩굴거리구,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그러다 보니 정오가 돼었습니다. 이제는 산장으로 올라 갈 시간입니다. 주섬 주섬..

여기는 부가부.. 북미 클래식 50선에 들만큼 빼어난 경관을 가진 캐나다 빅월 클라이머들의 성지같은 곳입니다. 11,000ft 큰 산의 꼭대기가 온통 만년설로 덮혀 있고 그위에 짙은 회색의 그라나이트 바위들이 여기 저기, 삐쭉 삐쭉 솟아있는 곳인데, 항상 별르던 곳을 결국 와 볼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아니.. 제가 우겨서 아이를 끌고 왔다고 하는것이 맞죠. 불쌍한 눔..

부가부의 한가운데에는 Conrad Kain Hut 이라는 산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2박 3일 백패킹을 계획하고 예약을 했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둘째 밤 밖에 예약이 안되더군요. 결국 첫째 밤은 산장 바로 옆에 캠프장에서 자는 식으로 스케쥴을 잡을수 밖에요. 하지만 좋습니다. 산행을 너무 편하려하면 안되죠. 자꾸 따지면 산신령님이 멋진거 안 보여줍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비포장 도로가 무려 30마일이나 되더군요. 비포장도로가 익숙치않아 거의 한시간 반을 꼬박 달려서 트레일 헤드에 도착하니 차들이 찬뜩 있었습니다. 부가부의 첫날인 오늘밤은 일기예보가 좋지 않습니다. 비가 온다구 들었는데 산신령님만 믿구 그냥 왔습니다. 그래두 올라가는 동안 하늘은 흐린 정도로 괜챦더군요. 트레일 시작 1km 구간이 무성한 소나무숲으로 저를 압도합니다. 시애틀의 분들은 익숙하지만 캘리의 매마른 숲을 다니던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숲입니다. 소나무 내음에 시냇물 소리. 졸졸.. 콸콸. 그리고 촉촉하게 밟히는 트레일의 흙..

숲을 빠져나오면 거대한 글래시어가 산사면으로 흘러내리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그 어래에는 글래시어가 녹으면서 만들어내는 엄청난 양의 물이 계곡을 채우고 큰 소리를 내면서 긴 계곡을 빠져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계속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그곳에 1972년 부터 산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Conrad Kain Hut 을 만납니다. 그곳의 높이가 약 7300ft. 그 위로는 다 만년설로 덮혀 있습니다. 올라가며 그 경치를 계속 보게되는데 연신 오 마이 갓! 어매이징! 대박! 같은 말만 나올뿐 이었습니다. 산을 많이 보지못한 아이에게도 산세에 압도된 표정이 보입니다.

예약문제로 어쩔수없이 산장에서 첫 밤을 보내지 못하고 멀마 떨진 곳의 캠프장에 텐트를 쳤습니다. 밤이 되자 역시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일찍 잤습니다. 내일은 산신령님이 실망 시켜주지 않겠지..

다음날 오전 내내 비가 오고 정오가 되니 조금씩 날이 개이기 시작합니다. 비에 젖은 텐트를 그대로 놓아둔체 더 높이 깊은 산속으로 올라갑니다. 경치가 좋은건 맞는게 확실헌데, 그게 다들 미쳐서 이곳에 오게 만들만한건가?

역시 뭔가가 있었습니다. 지도와 사진으로 보던 2000ft 짜리 거벽들이 만년설 위에 우뚝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입이 다물어 지지 않습니다. 정면에 Bugaboo, 왼편에 Snowpatch, 저 오른편에는 East Post 라 불리는 엄청난 규모의 그라나이트 픽들을 올려다 보면서 저도 모르게 저절도 만년설의 위를 걸어 그 거벽의 바로 밑까지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암벽등반로의 시작점 가까이 가서 벽을 올려다보고, 저 멀리 벽에 붙어있는 클라이머들도 보면서 저절로 행복해졌습니다. 이걸 오르면 더 좋은게 있을거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먼, 그냥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만도 마냥 좋더군요. 산신령님이 오늘은 욕심내지 말구 요것만 보구 담에 또 와라 하는거 같아 그냥 아쉬운 맘으로 만족하고 좀 일찍 산에서 내려와 산장으로 갔습니다.

두째밤은 예약이 있으니 자신있게 산장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대부분은 노련해 보이는 클라이머인데, 가벼운 등반을 목적으로한 두 아이를 동반한 가족과 연인들도 두 쌍이나 있었습니다. 다들 같이 저녁 먹으면서 차 마시면서 쫑알쫑알.. 넌 어디서 왔냐? 니가 만든 저녁 너무 맛있다.. 내일은 뭐할거냐? 어젠 밤에 비 많이 왔었는데 어땠니? 등등… 잡스런, 하지만 정감어린 얘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8시가 되니 다들 자러 들어가더군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등반을 시작하려니 모두들 자기두 모르게 이런 바른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전 오늘 하루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이렇게 밤늦게 까지 남아 글을 쓰고 있습ㄴ다. 지금 밖에는 거칠게 물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따땃한 산장안에 는 차를 마시며 윗층에서 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를 안주려 속삭이며 얘기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앞의 할아버지는 책을 읽고있고, 별을 보기위해 한쌍의 연인이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참 느긋하죠.. 내일 내려가야 하는데 참 아쉽습니다. 첫날 좀 경치를 즐겼는데 기상이 안좋아 오래 보지 못했고. 두째날은 오전은 비때문에 완전히 공쳤고 오후에 조금 산행하며 즐겼을 뿐입니다. 이 산과 더 많이 같이 하고 싶은데 내일 아침이면 작별 해야하다니. 쩝…

부가부는 제가 가본데중에 가장 멋진곳이었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레이니어가 가장 멋진곳이라 생각했는데 제겐 이쪽 산신령님이 좀더 쿨한거 같습니다. 물론 산의 순위를 매길순 없겠죠. 같이가는 사람. 산에 간 계절. 그 당시의 환경등이 복잡하게 얽혀서 각자의 기억속에 다 다르게 각인되는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퇴하고 나이가 좀 있으신 선배님은 제게 “울 앞산이 최고야!” 라구 말하시곤 했습니다. 젊었을땐 히말라야까지 다녀오신분인데 이젠 아무때나 올라가 동네 사람들도 보구 잡담하며 놀다가 내려 올 수 있는 산이 고맙답니다. 그러구 보니 내 나이에 따라서도 멋진 산의 순위가 바뀔수 있겠네요.

산장이 산과 사람들을 엮어내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아름다운 산속에 심각한 클러이머부터 가족 관광객. 연인들이 섞여있고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교류하고 다 같이 산을 즐기는것.. 휘트니, 캘리의 14er 에서 미친듯이 정상으로 질주하던 제겐 또 하나의 영감을 주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아직은 질주하고 싶네요. 또 질주하지 않으면 저를 이제까지 잘 돌보아주신 여러 산신령님들이 꾸짖을거 같은 생각두 들구..

 

보너스 사진 두개…

Conrad kain 이 사용하던 등산화의 replica입니다. 1930년대 하이테크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Banff와 Jasper 사이의 Mt. Athabasca 와 Mt. Andromeda. Icefield Highway 에서 지나 가다가 보이는 너무도 잘 생긴 산인데 11,000 ft 정도됩니다. 웬지 전 이두눔들을 보구있으면 연인같은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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