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 기행

현재의 감정에 솔직한것이 과연 좋은것이가?
그럼 그 솔직함으로 인하여 올 수있는 불이익이나 실망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것은 인간이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겪는 딜레마가 같은 것이 아니다. 그 근원은 하나를 선택하므로서 다른 하나를 버려야하는 그 모든 것을 가질수 없다는 자연의 법칙에 있다. 스님들은 이 해답을 극단적으로 삶을 단순화시키는 것에서 찾고 기독교인들은 신에게 영혼을 맞기는 데에서 찾는다.

수많은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우리에게, 현재 내게 보이는 타인의 환상을 근거로 느끼는 감정에 자신을 맞기는 것은 정말로 무서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박이 아련한 감정을 느끼는 인숙을 세무장이 묘사한 시각에서, 그 인숙이 주인공에게 하는 행동에서, 또 그녀을 대하는 주인공의 태도에서 순간순간의 느낌에 자신을 맞기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일수있는 것인가? 너무나도 자연스레 주변에서 쉽게 보는 사람들의 성격이 상황에 따라 꼬이기 시작하면 이렇게 까지도 얽힐수 있는것인가?

이것은 단순히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끝나지 않고 나의 현재와 미래까지도 적용 될수 있다. 나는 현재의 나를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와 다름을 알고, 나의 생각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쉽게 바뀔수 있음을 아는 당신은 과연 현재의 감정에 충실함으로서 오는 실망이나 불이익을 감당할수있는가?

이 소설속에서 등장하는 사람의 생각을 조합해서 볼수 있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당신은 무엇을 배우는가? 이 소설은 그 가능성의 끝을 어두움 속에서 진단하고 안개로 덥는다. 무책임 하게도 그 해법에 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그 해법은 누구도 주지 못함을 알지 않는가?

작은 희망이 있다면 앞으로 올 그 실망이나 불이익은 한낮 기우일지 모른다. 그리고 현재의 감정에 충실함으로서 진정한 솔찍함을 통해 자신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할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세상에 그렇게 우리를 인도하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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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이 소설을 알려 주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꼭 알고싶은데. 이 아름다운 아침, 이 단편을 또 읽으면서 그 스토리가 주는 통찰에 소중함을 느끼고, 그것을 공유할수있는 사람을 당시 미쳐 못 알아본 자신에게 실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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